남산센타 이 다니엘목자님께 질의합니다.

이다니엘목자님 그리고 이미소 사모님, 안녕하십니까?

오기철목자입니다.

저는 지난 19년동안 UBF남산센타에서 평신도 학사로서 시간 물질 진심을 다바쳐 헌신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제가 남산센타를 더이상 다니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목자님과 이미소 사모님에 대한 인간적인 염증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요한복음 제 14강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메시지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더군요. ‘또 어떤 사람은 자기영광과 세상욕심에 단단히 뿌리가 박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못합니다. 한 학사가정이 예수님을 따른지 18년이었는데 지난주에 떠났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오랫동안 따랐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뿌리를 내렸으며 어디에 거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오래 따라도 자기영광이나 세상적인 축복에 거하면 결국에는 예수님을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목자님께 묻겠습니다. 센타를 떠난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떠났다고 강변하셨는데 신학적으로 센타=예수님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센타를 다니든지 안다니든지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있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고 살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모임이 예수님 그 자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목자님 생각에는 남산센타를 떠나면 예수님을 떠난 것이라고 하신다면 그 논리와 신학적 기초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자기영광과 세상적인 축복에 단단히 뿌리가 박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저희 가정이 자기영광과 세상적인 축복에 기초했다면 우리가 다 아는바와 같이 헌신과 충성이 다른 모임보다 더 요구되는 UBF모임에서 지난 19년동안 과연 붙어 있을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건축헌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 안되는 전세도 월세로 옮기고 동역자는 추운 집에서 알러지 비염까지 걸렸으며 아이들은 감기로 늘상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저는 직장일 보다는 센타역사를 위해서 여러가지 손해를 봤지만 이를 기꺼이 감당하였습니다. 2000년도 저희가정은 선교헌금만 160만원이상씩 하였고 지난해 저의 월급은 약 350만원 정도였는데 선교헌금만 160만원까지 하다가 도저히 버거워 130만원 정도로 줄여 하였는데 과연 이렇게 헌금하는 저희를 보고 세상욕심에 뿌리를 내렸다고 정죄할 수 있는지요? 목자님도 이런 우리의 헌신을 보고 여러가지 역사에 주인공으로 세워 주었고 저는 지파목자로까지 세움을 받는 것 아닙니까? 과연 우리센타에서 목자님과 사모님의 허락없이 함부로 자기영광을 내세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정이 조그만 오피스텔 하나 구입한 것은 있습니다. 이것도 동역자는 마음에 부담이 되어 진실하게 다 고백하였다더군요. 그런데 사모님은 즉각 이를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사실을 동역자가 이야기하지 않아 몰랐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가정의 대소사를 남편보다는 자신들의 말을 듣도록 가르치는 곳이 있겠습니까? 설령 우리 가정이 세상적인 욕심이 있어서 오피스텔 하나 장만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아이 둘 달린 가장이 나이 40이 넘어서도 여전히 집을 가져서는 안되고 돈도 모아서는 안되며 이를 어기면 세상적인 욕심에 뿌리를 내렸다고 단죄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욕심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학사 가정은 집을 사면 세상적인 축복에 눈먼 사람이고 목자님 가정은 집과 자동차를 갖고 있는데도 복음적이라 하는 이중적인 잣대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을 살면서 과연 집을 사서는 안된다고 하는 논리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목자님과 같은 논리라면 UBF 사람들은 일생을 센타에만 다 갖다 바치다가 천국에 가야될 것 같습니다. 이제 UBF도 노후문제 자녀들 교육문제 주택문제등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은 데 과연 나중에 어려운 현실문제가 발생했을때 목자님과 사모님이 그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지 공개적으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가서 예수님이 다 알아서 축복해 주실겁니다 하는 한마디 말로 끝내 버릴 작정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목자님과 사모님은 양들의 목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목자가 무엇입니까? 양들의 보호자가 아닙니까? 양들의 눈물과 아픔을 씻어주는 것이 목자의 직분 아닙니까? 그런데 진실된 소감고백을 이용하여 양들의 비난거리나 찾고 정죄거리나 찾는것이 목자의 할 입니까? 그리고 등 뒤에서 진실을 호도하고 선량한 동역자들 앞에서 과거 양이었던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목자의 직분입니까? 설령 두분의 양들인 우리 가정이 크게 범죄했다 치더라도 양들의 범죄를 자신의 죄악으로 여기며 자기부터 회개하는 것이 진실된 목자의 자세 아닙니까? 재판에도 원고와 피고의 변론을 신중히 들어본 다음에 판사는 객관적인 판결을 내립니다. 그런데 남산센타는 당사자들의 변론의 기회는 막아 버린채 일방적인 인민재판식 여론몰이로 당사자들을 죄인으로 몰고 있는데 이것이 복음적이고 목자다운 행위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동역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저의 소견을 피력해 보고 싶은데 목자님은 전향적으로 그런 공개토론 자리를 만들어 줄 의향이 있으신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도 19년동안 헌신한 사람을 이렇게 매도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은혜스럽고 사랑이 충만하다던 센타에서 양이 자기들 말 않듣는다고 몹쓸 사람으로 낙인시키고 중상모략하는 일이 복음적인 단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요. 두분은 우리가정이 자신들의 요구조건 (제가 회사일이 바빠 화요모임과 금요소감 모임에 빠진 것과 동역자가 사모님의 지나친 간섭과 훈련, 그리고 이중적인 행위들에 대해서 힘들어 하는 것을 회개하기를 원함) 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가정을 역사에서 소외시키고 비난하였는데 이렇게 자신들의 권위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꼬투리 삼아 미워하고 무시하고 온갖 죄명을 다 갖다 붙이는 것이 목자들로서 할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모임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보는데 목자님과 사모님은 마치 센타의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절대순종이라는 미명하에 자기들 말이나 방향을 예수님의 말씀처럼 여기도록 하는 것이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일인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센타의 물질관리를 거의 목자님이 독단적으로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객관적인 공인회계사의 회계검사를 용인하고 그에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묻고 싶고 물질관리를 학사들에게 맡기지 않는 것을 복음적이라고 보는지 묻고 싶습니다.

스텝이나 일반학사나 다같이 하나님앞에 죄인일 뿐인데 예수님 아닌 인간 스텝에게 학사들은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는지 밝혀 주시고 만일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하면 되지 사사건건 가정일까지 간섭하고 남편말보다는 자신들의 방향을 더 따르도록 함으로서 가정이 늘 부부간에 불화가 있게 하는 것이 복음적인 행위인지 묻고 싶습니다.

사모님께서는 동역자가 임신을 하였는데 37살이 넘어서 세째 아이를 낳는 것이 복음역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낙태하도록 방향을 주어 남편에게는 자의로 낙태한 것처럼 말하고 낙태를 한 사실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4-5년동안 동역자 혼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가 최근에 말을 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범죄행위인지 복음적인 방향인지 공개적으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정은 19년동안 헌신한 단체지만 권위적이고 율법적이며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고 나온 것이지 예수님을 떠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역사를 섬길 것이지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남산센타의 동역자들과 양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29절을 보면 ”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외에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순종과 복종의 대상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스텝목자가 양들이 자기 말 듣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모른다고 몰아 세우는 것은 억지일 뿐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오직 경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에게만 복종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2002.6.29.
오 기 철 목자 드림

출처: https://web.archive.org/web/20040330001111/http://www.ubf-info.de:80/int/rep/kichuloh200206.kr.htm